작성일 : 09-06-12 12:20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7-28)
 글쓴이 : 신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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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역교재(6월12일).hwp (29.0K) [3] DATE : 2009-06-12 12:20:13
2009.06.12일자 구역교재 입니다(06/07 주일 예배 설교 - 김경헌 목사)


본    문 - 요20:27-28
제    목 -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서론>
오늘 본문의 도마의 의심 사건은 무엇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도마의 회복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터를 든든히 하셨고, 우리를 든든한 터 위에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도마의 ‘의심’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도마의 ‘의심’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고, 그것을 수정하여 교훈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본론>
1. 의심에 대한 성경적 정의
‘의심’이라 하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확실히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여 이상하게 생각함 또는 그런 마음”. 하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정의는 좀 다릅니다. 약1:6-8을 읽으십시오. 여기에 기록된 대로, 성경은 의심을 두 마음을 품은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마치 두 주인을 섬기는 것처럼 두 가지 마음에 똑같은 권위를 두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상황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의심(혹은 불신앙)은 불신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오직 한 마음뿐입니다. 그러므로 의심은 신자들에게서 나옵니다. 자신의 상식, 경험, 기준, 생각에 예수님의 말씀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한 결과가 의심인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만을 믿고 따르느냐? 아니면 우리 기준의 생각도 괜찮은 것으로 믿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2. 도마의 의심
우리는 종종 도마를 ‘의심’의 사람으로 부르면서, 동시에 도마의 ‘의심’을 믿음의 크기가 왔다 갔다 한 것으로 여깁니다. 믿음이 적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보여주셨기 때문에 믿음이 커진 것으로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개념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예컨대 마14:31) 이런 부분조차도 의심에 대한 성경적 정의를 생각할 때 믿음의 크기 변화를 말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된 ‘두 마음’의 오류를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도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마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불확실한 것이 있을 때, 때론 불손하게도 보이지만 물어보며 확실한 답을 얻었던 자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적어 못 믿었는데, 예수님을 보았으니 이제 잘 믿겠다”는 식으로 이 사건을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메시아사상과 도마의 메시아사상이 달랐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도마를 찾아가지 않으셨다면 도마는 믿음이 적은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가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자기중심의 기준과 생각을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시작 선포(요1:1)와 같은 위대한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다!!”.

<결론>
우리는 종종 ‘의심’이나, ‘불신’을 믿음이 좀 약해진 상태로, 다시 말해 그래도 좀 괜찮은 상태로 여깁니다. 도마나 베드로를 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두 사도 모두를 건지시며 꾸짖으셨습니다. 즉, 그것은 예수님께 꾸짖음을 들어야 할 ‘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자신의 사고방식을 함께 믿는 ‘죄’입니다.
따라서 의심은 불신앙이요, 심각한 죄입니다. 불신하고, 불평하는 것은 죄였습니다(광야의 이스라엘을 기억하십시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죽이는 길 만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예배 시간을 통해 우리의 의심을 죽이시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두 마음을 품고도, 의심과 불신과 불평을 하면서도 모르거나, 혹은 괜찮다고, 혹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혹은 죄는 아니니 불신자보다 낫지 않느냐고 애써 안위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예배 시간, 설교를 통해 찾아오실 때 그 분을 만나 우리 자신의 기준을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회복되고, 다시금 부활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예배, 이번 주 설교, 여러분은 어떠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까? 자신을 죽일 준비는 하셨습니까? 오늘, 내일 이것을 묵상하며 주일을 준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