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29 17:44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눅17:1-10)
 글쓴이 : 신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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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역교재(7월31일).hwp (15.0K) [16] DATE : 2009-07-29 17:44:18
2009.07.31일자 구역교재 입니다(07/26 주일 예배 설교 - 김경헌 목사)


본    문 - 눅17:1-10
제    목 -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서론>
지난 시간에 우리는 막9:41에 나오는 ‘물 한 그릇’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다음, 42절에 이어지는 말씀이 ‘실족’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연자 맷돌’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로 이 문맥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오늘은 막9:42을 이해하기 전에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동일한 말씀을 서론격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 가운데 ‘실족’(실족하게 하고, 실족 당하는 모든 일)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절). 세상이 아닌, 교회 안에서 ‘실족’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을 경고하십니다(1절). 교회 안의 어떤 작은 자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2절).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실족케 하지 않을 방법도 가르쳐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죄를 경계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는” 것입니다(3절). 이 부분은 교회의 치리와 권징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권징을 하면 실족하는 것이 아니라, 권징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죄로 인해 실족하게 될 일이 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진정한 ‘용서’(4절)는 실족케 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어떤 형제의 죄를 그냥 두면 그 형제 뿐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기 쉬운데, 그 형제의 죄를 경계(권징)하고, 또 회개하는 그를 용서하여 그 죄를 소탕한다면, 바로 이러한 권징과 용서를 통해 실족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하루 일곱 번의 용서(4절), 더 나아가 일흔 번씩 일곱 번(마18장)의 용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구합니다(5절). 실족하지 않고, 혹은 실족케 하지 않고, 경계와 용서로 실족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오직 믿음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믿음의 크기를 의미하기 보다는 믿음의 본질을 의미합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지만 이것은 나중에 자라 큰 나무를 이루는 믿음이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완성해 가는 믿음입니다.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했지만 단지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10절)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내가 믿음이 커서 이 일을 감당했습니다”가 아니라, 위대한 일을 이루어 놓고도, “저의 믿음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라고 자신의 공로를 배제할 수 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공로를 철저히 배제하고, 계속해서 자라가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실족케 하지 않는, 그리고 실족하지 않는 방법이며, 죄를 경계하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여 교회 안에 실족을 방어하는 방법임을 오늘 본문은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실족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나셨지만 실족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셨고, 그들을 위해 기도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친히 십자가를 매시고 죄의 바다, 사망의 바다에 빠지시고, 바로 그 곳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실족케 함으로 심판 받았던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오늘 우리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믿음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과 세상 정에 치우친다면 실족케 하는 죄를 범할 뿐 아니라, 교회 전체가 실족 당할 것입니다. 믿음의 방법을 충실히 따라, 실족케 하는 일도 하지 않을뿐더러, 실족 당하지도 않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